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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연구단] 일제 전시체제기 정감록의 유통과 조선 민중의 미래관
작성일 2025-05-15 조회수 78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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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201699




국문초록


이씨 왕조의 멸망과 진인 정씨의 출현을 통한 새 왕조 건설을 핵심 내용으로 한 예언서 정감록은 일제 말기까지도 줄곧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제 측의 파악대로 정감록을 매개로 한 인식과 행위는 기본적으로 민중 사회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던 ‘불온성’과 저항성의 표출로서, 이것이 전시체제기 식민지 조선에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1936~1944년 시기 일제 당국의 감시망에 걸린 30건의 관련 사례들을 통해 보면, 이들의 현실관은 당면한 전쟁을 정감록의 삼재로 해석하며 그 대응 방법을 제시한다든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흉작과 전염병, 그리고 일제의 수탈이나 동원정책 등을 정감록에 나온다는 구절과 연결해 해석하는 식으로 나타났다. 또 이러한 현실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이들이 그려내고 있는 미래관과 연결된다. 모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미래의 모습은 바로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한 새 세상에서 출발한다. 정감록의 구절들이 당면한 전쟁 상황과 일제의 패망을 연결시켜 예견하는 명분의 하나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미래관은 독립의 과정을 정씨로 대표되는 진인이 출현하여 성공시키고 계룡산을 도읍 삼아 등극할 것이며, 그 이후의 세상은 물자가 풍부해져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조선이 동양과 세계를 지배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 건설될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상이 국민주권에 기반한 공화주의 정부가 아니라 군주주권의 왕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즉 ‘이씨 조선’이 ‘정씨 조선’으로 대체된 독립 국가를 꿈꿨다는 것, 그리고 이 새 정부가 과거의 중국이나 현실의 일본처럼 동양과 세계에서 패권을 누릴 것으로 본다는 점 등 미래관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꿈꾼 세상이 왕이라는 절대자는 존재하되 양반 귀족 중심이 아닌 민중 중심의 사회였음은 분명하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주의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만이 유일사상으로 인정되던 시기에 도저히 이를 받아들여 ‘황국신민’으로 살아갈 수만은 없었던 조선 민중에게 정감록의 언술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독립과 해방의 미래를 설계해볼 수 있는 탈출구이자 매개체로 기능했던 것이다.